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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어른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본다. '상상의 스승'으로 믿고 따르는 어린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분명 어린이였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건만, 한국의 어른들은 어린이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린이와 문학을 이야기하는 김지은 평론가가 쓴 첫 에세이 '어린이는 멀리 간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2개국 중 가장 불행하다'는 한국 어린이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 그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동화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책을 통해 어린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온 저자가 수년 동안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포함해 다양한 산문을 묶었다.
어린이를 보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 사이로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눈앞의 아이를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해서만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이를 부족한 존재, 가르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아이들이 더 먼 곳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까'.
그동안 깊게 고민해본 적 없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더라도 괜찮다. 저자는 어린이와 어린이 책에 관한 이슈가 발생할 때 기자들이 1순위로 찾는 인터뷰이인 동시에 'X'(구 트위터)에서 수만 명의 팔로어가 따르는 인플루언서다. 어린이 문학 전문가인 저자가 그간의 창작, 비평, 연구 현장에서 보고 겪으며 터득한 관점과 지혜가 페이지마다 녹아있다. "어린이는 자신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고발하고 구조에 나서고 행동하는 옆집의 어른들을 기다린다"처럼 울림이 긴 문장이 즐비하다.
왕당파와 프로이센 군대가 프랑스 혁명의 파고를 막으러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들의 공포심을 부른 배경이었습니다. 희생자에는 어린이와 여성도 포함돼 있었지만, 홍위병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죽은 이들 모두가 혁명의 적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지도자들이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장 폴 마라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국민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무장한 뒤 반역자들을 칼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혁명에 핏자국이 선명해질수록 불안은 커집니다. 더 많은 피가 혁명의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였습니다. 극단과 폭력을 배제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질서 있는 민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규모도 커집니다. 와인 생산지로서 부유함과 넉넉함을 자랑하던 도시, 보르도의 지롱드에서 온 사람들 중심으로 온건한 사람들이 세력을 규합합니다. ‘지롱드파’였습니다.
드디어 한국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지난 주 나온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이다. 사실, 전쟁의 배경과 진행과정, 참상의 성격, 협상 과정,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종교적 배경, 제3자의 중재, 국제사법기구와 한국 평화운동의 대응, 언론의 보도 논조까지 아우르는 이러한 책은 아마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 듯싶다.
이 책의 1부에서 알려주는 가자 지구의 피해는 너무 끔찍하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의 작년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4만 5천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는데, 그 가운데 거의 3만여 명이 어린이거나 여성이다. 또 건물 밑에 깔려 있다고 추정되는 다수의 실종자가 만여 명이며 가자 지구 전체 인구 230만 명 가운데 190만 명이 강제이주를 당했다. 게다가 주택, 교육시설, 종교시설, 의료시설이 많이 파괴되었고 외부로부터의 생활필수품 반입이 차단당했으며, 대부분의 가자 사람들은 텐트에 거주하며 굶주림에 시달린다. 가자 지구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서안 지구의 상황도 매우 어렵다. 작년 말까지 800명이 사망했으며 체포되어 구금 상태에 놓인 만 명 넘는 사람 대부분은 혐의 없이 행정처분만으로 갇혀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평소 교묘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자행되지만 전쟁에서는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젠더폭력을 다루는 3장은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양측 모두가 성폭력, 성희롱, 구금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했음을 밝히면서도, 이스라엘의 check here 이번 군사작전에 따른 사망자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전 분쟁 시기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이 책의 4장은 설령 전쟁이 곧 끝난다고 하더라도 가자 지구에서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대기와 수질, 토양이 오염되었고 대다수 농장이 황폐화되었으며 나무의 거의 절반이 파괴되었다고 밝힌다. 전쟁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농경지를 줄이고 재배 작물의 종류도 제한하며 모래를 반출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천연자원을 수출했지만, 이번 전쟁은 구조적·행위자적 특성을 띠고 있어 생태학살보다는 생태폭력으로 규정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각종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인공지능을 실전에 투입해 첨단기술을 실험하는 기회였다는 5장의 지적은 나로서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9장은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전략을 '절멸의 정치'로 규정하면서 이 전쟁을 그 연장선상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펴볼 국가폭력의 층위는, 거의 주목되지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이다"(225쪽)는 서술은 이스라엘 내에서도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제3부의 10장과 11장은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집필됐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란 소위 국익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의 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에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응이다. 10장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논조를 비교해 분석하며, 11장은 북한의 입장을 <로동신문>을 통해 보여준다.
이제 이 책에서 아쉬운 대목을 짚어볼 차례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국제정치는 항상적으로 주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2장과 7장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역사적·현재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고립되고 학살되기까지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왜 그렇게 했는가, 소위 아랍 형제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거나 내버려두었는가하는 내용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민주당의 바이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로 바뀌었음에도,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왜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없는 점도 아쉽다. 그저 유대인의 강력한 로비 때문에 전쟁 개시 이후에도 그토록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정치, 역사, 종교, 국제법, 협상, 교육, 젠더, 생태, 인공지능, 남북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식견을 모아 책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여러 전문가(와 1장을 쓴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가)의 입장은 생명, 평화, 생태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기반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로켓 공격에서 시작되었지만, 맺음말에서 인용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처럼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이 책의 집필에 참가한 저자들은 하마스를 비판하면서도 상대적 약자인 팔레스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의 치유를 바란다는 평화 지향적인 입장에 서 있다.
사실 중동이나 평화연구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서평을 쓸 자격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단지 내가 연구원장으로 있는 기관에서 지난해에 이 책의 필자인 이찬수, 강혁민, 서보혁, (그리고 이 책의 필자는 아니지만) 홍미정 선생님을 모시고 이 책과 같은 주제로 좌담회를 열어 지식을 넓히고 의견을 경청한 인연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전문적인 논문보다는 한국의 일반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펴내자는 것이기에,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소감을 써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가지는 궁금증 하나는 이 전쟁의 명칭이다. 2024년 우리가 좌담회를 개최할 때에는 다소 찜찜한 마음으로 이스라엘-가자 전쟁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 책처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명명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 어디엔가에 전쟁의 이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짧은 지면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다 펼쳐놓을 수는 없지만, 독자로서 특히 인상적인 구절 두 군데를 소개하고 싶다.
97쪽에서는 나무와 팔레스타인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2021년 4월 14일 이스라엘군의 베이타 침공 중 총에 맞아 사망한 주민 파와즈 하마옐(Fawaz Hamayel)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나무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주민과 나무 간에 친밀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과 어울려 사는 태도를 지닌 팔레스타인인지만, 98쪽에는 2018년 4월 6일 '타이어의 금요일'에 어마어마한 양의 타이어를 불태워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가리면서 농담조로 타이어가 오존층을 파괴해 '다 같이 존엄하게 살거나 아니면 다같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슬픈 구절이 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은 무엇인가. 2장에서는 느슨한 국가연합을 제시하면서도, 그것이 실현가능한 방안이라기보다는 평화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참상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이 책의 저자들과 같이 평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은 친절하면서도 포괄적이며 입체적인 안내서이다.